악몽
아주 어두운 꿈이었다
꿈이라는 달콤한 말이 아니라
어두운 악몽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꿈을
아주 아주 깊고 어두워서
눈을 감으면 그 꿈이 생생하게 현실과도 같이 떠올라 부서진다
두렵다 그래 이건 꿈이 아닌 것 같다
매일 눈을 감을 때마다 모든 생각들이 그 악몽에 모여 뭉치고 뭉쳐 나를 삼킨다
꿈속에 있는 나는 누구를 바라보고 있었나
붉고 붉은 피 웅덩이에 온몸을 묻고 있었다
무거운 몸을 일으키니 무언가가 걸렸다
첫 번째로 바라본 건 붉은 눈동자였다
그리고 차가운 감촉이 두 뺨으로 느껴졌다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이라는 감정
절대로 만나서는 안 되는 존재를 만난 기분
차가운 손가락이 얼굴에 닿았다
나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천천히 감기더니 갑자기 눈 앞이 검게 물들었다
먹물을 뒤집어쓴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에 갇혀있었다
잠시 뒤 눈으로 빛이 들어온 관경은 절대로 좋은 것들이 아니었다
내 앞에 쌓여있는 동료들의 시체와 뒤늦게 느껴지는 내 몸 위에 쓰러져있는 사람
고개를 살짝 밑으로 내려 바라본 그곳에는 그래 내가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 쓰러져있었다
하얀 꽃과도 같은 드레스는 어느 순간 붉게 물든 체 힘없이 두 눈을 감고 잠에 들어있었다
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것을
뒤늦게 발견한 그 사람들의 모습에는
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
모두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
그녀까지도 내 몸에 애처롭게 손을 뻗은 체 금방이라도 들릴듯한 비명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
괴롭다 이것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
천천히 그들을 향한 두 손에는 붉은 피가 가득 흘러넘쳤다
나는 무력하다 소중한 이들을 이 손으로 지킬 힘 하나조차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비웃고 있었다
이런 꿈속에서 조차도 나는 그들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맴돌다가
천천히 그들을 향해 손을 뻗다가 갑자기 내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
그들에 눈을 끝으로 훅 하고 떨어진 바닥은 아주 검고 어두운 곳이었다
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검고 끈적이는 게 천천히 차오르는 조금만 걸어가면 벽 같은 곳에 닿는 이상한 곳이었다
벽을 천천히 두드리고 조금씩 소리를 쳐보자
벽에 소리가 부딪혀 그 작은 공간을 계속해서 울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분명히 발목까지만 차올랐던 검은색에 물이
어느새 허벅지까지 흘러넘쳤다
점점 차오른다고 자각했을 때는 코 밑으로 물이 차오른 뒤였다
무거운 몸을 누군가가 저 밑으로 끌고 가는 느낌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
눈을 다시 뜬 곳에는 내가 아주 차가운 대리석 위에 쓰러져있었다
밝은 불빛이 눈을 찌르고 잠시 뒤 바라본 곳에는 아이리스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
나는 급하게 그녀를 붙잡고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
커다란 무언가가 목을 막아버린 듯 기침만 나오고 말은 나오지 않았다
기껏해야 작은 신음만 뱉을 뿐이었다
그녀는 나를 언제나처럼 상냥하게 바라보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
뒤늦게 이 자리를 이해하려고 고개를 두리번거렸을 때는 불편한 길고 긴 검은 머리카락이 내 것이라는 것
그리고 하얗고 하얀 대리석이 빛나는 이곳은 내 기억 속에 없었다는 것이다
아이리스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내밀었다
그 손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내 것이 아닌듯한 다리를 천천히 한 걸음씩 디딜 때마다
발바닥이 무수한 유리조각을 밟는 듯 아파왔다 내가 주저앉자 순식간에 바닥에 물이 차올랐다
아이리스에 얼굴이 천천히 내 눈앞에서 바스러지더니 내 몸도 천천히 바스러져 내리며 물속에 녹아내렸다
그리고 또 눈을 떴다
이리저리 비틀어진 어두운 마을 한가운데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 눈빛
무언가 이상했다
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마을에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알 수 없는 말을 외치며
다가왔다
공포를 느꼈다 두려움을 느꼈다
눈을 감고 그만이라며 계속해서 소리쳐도 멈추지 않았다 그 모든 소리들이
귀에 뭉쳐서 괴롭게 만들다가 순식간에 부서져 사라졌다
아주 밝고 밝은 빛이 눈으로 들어왔다
평소 와도 같이 내가 잠든 방에 조금 무겁고 따뜻한 무언가가 내 배를 누르고 있었다
무거운 상체를 위로 올려 그것을 바라보니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캐트라가 보였다
그리고 내 손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꼭 쥐고 있는 아이리스의 손과 차가운 물수건이 몸 위로 철퍼덕하고 떨어져 내렸다
내가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겨우 올려 울 것 같은 둘을 진정시켰다
나에게 안겨드는 캐트라를 쓰다듬고 별로 나오지 않는 말로 아이리스를 위로했다
밤사이에 몸에 열이 훌쩍 올라가 아무래도 반쯤 죽어있었다는 것 같다
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고맙다고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
천천히 안아주고 눈을 감았다
아주 긴 악몽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